나의 작업은 차(Tea)를 우려낸 찻물로 그려진 티드로잉(Teadrawing) 입니다. 차는 매우 매력적인 재료입니다. 인공적인 아크릴의 느낌과 다르고, 수채화의 느낌보다 자연스럽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은 색감을 냅니다.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차는 무엇보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의 작업에 적합한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을 통해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이 쉼을 얻고 새로워집니다. 티드로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영적인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2007년 캔버스 위에 차를 충동적으로 부은 것을 시작으로 2007-2011년까지(첫번째 시기), 2018-현재까지(두번째 시기) 티드로잉시리즈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첫번째 시기의 티드로잉의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에 의한 고통과 슬픔입니다. 주로, 남녀의 형상, 꽃, 나무, 칼, 컵이 그려지며, 때때로 자연물과 인간의 형상들이 결합되기도 합니다. 두번째 시기의 티드로잉의 주제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시각화입니다. 티드로잉 시리즈를 통하여 죄와 욕망, 심판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저는 회화가 실질적으로는 얇지만, 깊이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저의 작품 또한 종이에 그려지기에 얇지만, 깊이감이 있는 작품이 되길 원합니다. 초창기의 작업이 인물이나 사물 등 하나의 사건을 중점적으로 그려낸 것이라면, 현재의 작업은 많은 상황들과 인물들이 레이어를 이루며, 서사적인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티가 흘러내리고, 마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흔적들도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형태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흐르는 부분들과 구상적인 부분들이 한 화면 안에서 조화롭게 펼쳐지길 원합니다.
[7-33 벙커]
스케치북 위를 뛰어놀던 오래된 친구들을 들여다본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내 기억 속 어떤 상상에 관한 이야기다.
꼬불꼬불한 이 작은 낙서들을 잘 다듬어 캔버스 위로 옮겨보자. 커다란 모자를 쓰거나 레몬색 바지를
입는 건 어떨까? 나무에 살고 싶은 물고기 친구들도 있다. 모자를 닮은 자동차(아니 자동차를 닮은 모자일까?)
도 있고 바다 위를 뛰어다니거나 용감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 친구들에게
이름 대신 날짜와 숫자를 붙여주었다. 누군가에겐 다정한 강아지가, 누군가에겐 멋진 새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엔 ‘그림.. 그리기요?’라고
자신 없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무언가 그린다는 것은 늘 취미 혹은 직업 같은 명확한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이었다.
가끔은 심심해서 그리고, 가끔은 즐거워서 그리고, 가끔은 외로워서 그렸다. 그리는 동안에는 딱히 내가 무엇을,
무엇을 위해 그리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간을 내어 정리해 보자. 나는 비둘기를 좋아하고 물고기를 좋아한다. 나무, 원피스, 바다, 두더지, 고양이, 붕 붕이,
강아지, 봄, 모자, 튤립도 좋아한다. 특히 그림 그리기를 제일 좋아한다. 나는 바퀴벌레를 싫어한다.
우울함도 싫어하고 무례한 사람도 싫어한다. 그리고 외로움, 독일의 겨울 같은 차갑고 습한 것도 싫어한다.
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즐거워서, 외롭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세상과 다정하게,
오래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이런 말들을 비밀로 할 수 있어서다.
나의 그림은 현재에 대한 ‘망각’ 과 흐릿한 기억 속의 ‘망상’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 벙커 같다.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좋아하는것들로 가득 채워진 나의 벙커.
하지만 ‘나’ 라는 현실의 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결국 하나로 묶인 시공간.
나의 작업은 스케치북 앞에 엎드려 시간을 보내던 작은 아이로부터 시작된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같은 질문이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캔버스 앞에 서있는 나에게 메아리로 돌아온다.
나는 머리카락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고 그들의 관계성에 질문하며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머리카락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인 생명력과 에너지를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에서 느끼고 작품을 통해 그 에너지를 발산한다. 가상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선을 한 올 한 올 겹겹이 쌓아 연결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연결한다. 선 작업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생명력과 에너지를 표출하는 기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긋는 재료 또한 펜이나 연필처럼 보다 쉽게 그릴 수 있는 재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 넣어 물감의 유기적인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나에게 인체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신비로운 대상으로 자연과 동일시되게 느껴졌다. 이 둘의 연관성을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기 때문에 얼굴이 바탕이 되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 남성, 여성, 아이의 얼굴이 아닌 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은 외부의 정보를 읽어내며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는 창구로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사유하게 하는 매개체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초점 없는거 같기도 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인상으로 나타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초점 없는 흐릿한 눈동자에 꿈속에서 보는듯한 흐릿한 자연적 요소를 넣고 있다. 현재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지금껏 봐왔던 주변에 있는 자연들이 우리의 기억 속 너머에만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디자인적이고 세상의 추악한 면이 제거된 아름다움을 질서화되고 안정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안전하고 편안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작업에 등장하는 자연적 요소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이런 자연적 요소들을 재해석하며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머리카락 또한 캔버스에 그려 넣음으로써 부분적인 신체의 일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유기적인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순환을 반복하듯이 인간의 머리카락 또한 자연의 일부처럼 작용한다. 이것은 마치 계절의 변화를 보듯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처럼 반복된 순환을 통해 존재한다. 나는 신체를 이용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작은 식물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에너지를 나타내며 이를 신체와 자연을 동일시 시키며 나아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